[이데일리 박상기 칼럼니스트] 최근 하토야마 유키오 신임 일본 총리가 다음달 오바마 미 대통령의 방일을 앞두고, 자민당 정권 시절 미일간에 합의된 후텐마 미공군기지의 이전 약속을 재검토할 의사를 비쳐 미국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이는 자신이 지난 총선 공약으로 내세웠던 '지위 협정 개정을 통한 대등한 일미 관계 구축' 정책과 궤를 같이 한다는 관점에서 앞으로 하토야마 총리가 과연 어디까지 대미 정책의 변화를 모색할 것인지, 또한 동북아 최대 미군사 거점인 일본의 뜻밖의 비협조를 결코 좌시하지 않을 미국은 과연 어떻게 일본을 압박할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태평양 전쟁 종전 이후, 전쟁 재도발 의혹에서 벗어나기 위해, 또한 전후 복구 사업을 위한 막대한 지원을 이끌어 내기 위해, 그리고 아태지역에서 확고한 경제대국으로 자리 잡고 더 나아가 월드 파워로 부상하기 위해, 그리고 우방을 넘어 맹방으로서의 확고한 보살핌을 이끌어 내기 위해, 일본은 그동안 처절하고도 굴욕적인 대미 외교 협력 노선을 줄기차게 견지해 왔다. 최근 들어와서는, 한국과 중국과의 역사 문제를 표면 쟁점으로 부각시키고 있으나 실제로는 가까운 미래에 펼쳐질 전략적 천연 자원 확보전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확보하기 위해, 또한 독도 분쟁으로 대표되는 영토 침탈 계획을 은폐하고 서방국들의 이해와 지지를 이끌어 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미국의 협력을 이끌어 내기 위해, ‘일본은 미국의 속국’으로 자조할 만치 철저하고도 계획적인 친미 혈맹관계를 주장해 왔다. 이런 역사적 배경에서 과연 신임 히토야마 총리의 핏줄에 흐르고 있는 미국 의존도 탈피 의지는 어디까지 현실화 될 수 있을 것인가는 한번 생각해 볼 만하다. 그러나 결론부터 얘기한다면, ‘그런 일은 절대로 없다’ 이다. 이유는 미국의 절대적 지지 없는 일본은 아직까지 그들이 갖고자 하는 것들을 자력으로 획득하기엔 군사, 외교, 심지어 그들의 가장 큰 장점인 경제력 측면에서도 역량 미달이며, 오히려 무서운 기세로 치고 올라오는 중국의 동북아 경제와 군사력 모두에서 패권 장악 위세에 눌려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국의 요즘 형편은 어떠한가? 어느새 무시 못할 아시아의 패주로서 넘쳐나는 달러를 군사력 증대에 퍼 붓고 있는 중국을 견제하는 한편, 지리하게 그러나 끈질기게 핵문제 하나 가지고 미국의 체면을 다 구기고 있는 북한을 어떻게든 다독여야 하는 피곤한 상황이다. 경기 좋던 시절처럼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는 미국의 입장으로선, 전략요충지인 극동 지역에서 예전 같은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선, 그 어느 때보다 말 잘 듣고 돈 잘 대는 일본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인 것이다. 그런데 간혹 드물게 언짢은 내색을 내비치고 토라진 적이 없진 않았지만, 대체로 종전 후 60여 년간 변함없이 또한 배알도 없이 시키는 대로 하이! 하이! 하며 말 잘 들었던 일본이 갑자기 배신을 때리니 난감하기 이를 데 없는 상황일 것이다. 옛날 같으면 버릇을 고쳐 놓겠다며 곧장 촉대 뼈 까듯, 경제, 외교, 군사적 압박 수단을 가하겠지만, 난감하게도 미국은 예전처럼 함부로 그리고 곧 바로 일본을 틀어쥐고 흔들어 댈 만큼 사정이 좋지 않은가 보다. 일본의 당돌한 거부 표시에 실제적인 외교적 비난이나 군사 외교 경제적 제재조치를 퍼 붓는 대신, 몇 마디 당혹스럽다는 등 기존 정부의 합의를 성실히 이행하라는 실무자 급 수준에서의 외교적 수사만 내 놓은 체 마냥 끙끙 앓고만 있는 것이 그 반증이다. 필자는 이 또한 미국의 형편을 정확히 꿰뚫고 있는 일본 외교 협상팀의 선방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선방이라니? 무슨 얘긴가? 이번 일본 총리의 거부 발언은 단순한 객기가 아니다. 또한 언론에 드러나는 표면적인 입장이나 태도가 진짜가 아니라 흔히들 ‘혼네(진심)’니 ‘오까네(허울)’니 라고들 부르는 그것, 외부 사람들의 눈을 피해 막후에서 사케잔 기울이며 나누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진짜라는 것을 지난 세월 속에서 알아채고 있지만 짐짓 당황한 척 외교적 너스레를 떨어 주는 미국과의 단수 높은 교감을 믿고 하는, 한마디로 짜고 치는 고스톱이다. 여기까지 보면 금번 하토야마 총리의 대미 강경노선적 입장과 일본 정국내의 혼전기류는 우리와는 무관한 일본의 문제로만 인식될 수 있다. 또한, 역대 일본 정부와 내각에서 중의원 의장, 총리, 외무장관을 배출한 정치 명문으로서 대미의존 노선 탈피를 끈질기게 모색해 온 친가의 내력을 본다면 더더욱 일본과 미국만의 문제로 비쳐질 수 있다. 그러나 일본과는 좁은 대한 해협 하나만 건너면 되는 지척에 있는 데다, 대규모 정예 미군의 일본 주둔의 근본적 원인인 중국과 북한을 실제로 접하고 있는 우리로선, 금번 하토야마 총리의 미군기지 이전 재검토 사태는 결코 남의 일로만 볼 수 없다는 판단이다. 그에 따른 피해 당사국은 다름아닌 바로 우리 대한민국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첫째, 당초의 예상과는 달리 탈레반의 수그러들 줄 모르는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 막대한 군사비를 퍼 부었고 수많은 미국과 연합군의 희생자가 속출하면서도 전혀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딜레마에 빠진 아프카니스탄이나 이라크에 대한 군사적 경제적 비용분담 요구에 대한 경제대국 일본의 안면몰수 식의 거부는 결국 규모의 차이는 있겠으나, 꿩 대신 닭이라고 우리에게 불똥이 튈 것은 자명한 이치다. 또한 채권 대국이자 미국 산업 투자의 큰손이며, 급속도로 팽창하고 있는 중국 군사력 견제에 있어 이미 단단히 한 몫을 하고 있는 자위대를 보유하고 있는 일본에 비해, 무역 수지 불균형에다 미국의 대외 군사외교 정책에 실질적인 기여를 그다지 하고 있지 못한 한국은 크게 입장이 다른 것이다. 여기에다 최근 들어, 실제 당사자인 한국을 북핵 문제 협상테이블에서 철저하게 배제해 온 미국을 향해 우리 정부가 발표한 “그랜드 바겐” 제의는 가뜩이나 여러모로 짜증 나 있던 미국에게 좋은 빌미로 작용할 것으로 보이며, 이번 일본의 거부 사태가 결국 그 도화선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미국이 일본에게서 얻고자 하는 것을 일본이 최근 발표한 것처럼 완전 무시 한다거나 미국의 일본을 중심으로 한 동북아 지역에서의 미국의 군사외교전략 수행에 실질적 차질을 야기할 만치, 일본이 미국측의 협조 요구 지나치게 오래 외면한다거나 해서 미국의 원초적으로 자극하는 사태는 거의 발생하지 않는 것으로 보는 게 맞다. 오히려, 일본은 미국측의 요구사항을 최종적으로는 수용하되 그 협의 과정에서 (특히 외부 언론을 철저히 차단한 막후 교섭에서) 양국간의 다각적인 현안 문제 들에 대한 미국측의 양보의 폭과 수준 넓히기, 국제 외교 경제 문제에서의 미국의 일본측 역성 들기 등을 들이 밀며 일본의 협조가 그 어느 때 보다 절실한 미국을 압박 상당부분 성과를 얻어 낼 것으로 예측된다. 이처럼 향후 일본의 대미 외교 협상 성과는 결국 직간접으로 우리에게 이익보다는 피해를 안겨다 줄 공산이 크다. 당장 아프가니스탄 파병 협조 범위와 규모 확대 요구를 해 오면서 동시에 주한미군의 미국의 해외분쟁 지역 재배치 이야기를 비치며 이미 우리 정부를 압박해 오고 있다. 한편으로는 한미 FTA 의회 비준통과를 위해 재차 노력하고 있다는 등 FTA 매니아인 우리 정부 당국자들의 구미를 당기는 당근 회유책도 잊지 않고 챙기고 있다. 이런 식으로 가다간 또 한번 미국의 회유와 압박에 밀려 또 다시 실익 없는 바겐세일 협상을 하게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그것도 이웃 일본이 지불하기로 되어 있는 외상값을 우리가 애꿎게 물어야 되는 꼴 날까 두렵다. 과연 이 시점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우선, 미국측이 요구해 올 각 사안에 대한 수용 불가 혹은 조정 불가피 논리를 뒷받침 해 줄 수 있는 어려운 재정 상황, 반 국민 정서, 미국측의 미온적인 한미FTA 비준 처리태도 등을 이슈화하여 성에 차진 않지만 그래도 협상에서 최소한의 제한적인 주도권이라도 확보하는 노력은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일단 만나 보고, 얘기나 들어보고 나서 하는 식의 비주도적 협상태도와 전략은 이미 진 것이나 다름없음을 이미 우리는 너무 많이 경험해 오지 않았던가?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이 있다. 우리 정부의 외양간은 제대로 고쳐 졌는가? 정말 더 이상 소를 잃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겉으로는 숭고한 민주주의와 자유경제로 위장한 체, 속으론 극도의 국수주의와 냉혹한 시장자본주의로 우리를 사방에서 옥죄어 오는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우리 정부는 어떤 협상전략을 갖고 있기에 필자의 눈엔 넋 놓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걸까? 진정 보고 싶다. 우리 정부의 현란한 국제협상력을. 박상기 글로벌협상컨설팅 대표 위스콘신 매디슨 MBA 졸업 연세대학교 협상학 겸임교수 CJ 미디어 국제협상담당 상무 역임 역서 : 협상의 심리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