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기의 영화속의 협상: 월스트리트, 상대의 기를 꺾고 현혹하라

작성일2007/07/30 조회수57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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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콘신 매디슨 MBA 졸업 연세대학교 협상학 겸임교수 CJ 미디어 국제협상담당 상무 역임 역서 : 협상의 심리학

가진 것도 없고 별 배경도 없이 오로지 돈에 대한 끝없는 탐욕으로 막대한 부를 일군 투자 전문가 고든 게코(마이클 더글러스 분). 지방의 무명 대학 출신으로 어떻게든 월가에서 성공해 보겠다는 야망을 안고 게코를 찾아 온 버드 폭스(찰리 쉰 분). 올리버 스톤 감독의 1987년 작 ‘월스트리트(Wall Street)’는 이 두 사람을 내세워 냉혹한 자본시장의 생리를 실감나게 그려내고 있다. 이 영화는 특히 비즈니스 세계의 필수 요소인 ‘협상’에 대해 많은 시사점을 던져 준다. 그중에서도 백미는 게코가 월가의 또 다른 큰손 래리와 애너콧제철 인수를 두고 담판을 벌이는 신에 함축돼 있다.

 


일요일 저녁, 뉴욕 롱아일랜드 해변에 있는 고든 게코의 저택에서는 내로라하는 유력 인사들만 초대된 파티가 무르익어 간다. 이때 게코를 찾는 전화 벨소리. 월스트리트의 또 다른 큰손 래리로부터 걸려 온 전화다. 급한 일이니 지금 당장 만나자는 얘기. 얼마 후 래리가 고문 변호사와 함께 게코의 저택 현관으로 들어선다. 간단히 인사를 나눈 게코는 래리를 2층 서재로 안내한다.

벽마다 걸려 있는 값비싼 유명 화가의 그림들, 희귀하고 값진 골동품들, 잘 배치된 고급스러운 가구, 장식장을 가득 채운 희귀한 총기류. 거부인 래리도 두리번거리며 구경한다. 뒤에서 따라가며 이런 래리의 모습을 지켜보는 게코의 얼굴에 회심의 미소가 번진다.


협상 전략 키 포인트 1


당신에게 유리한 장소(Venue)를 택하라.
기선 제압(Power trapping)으로 상대의 기를 꺾어라.
사람은 누구나 상대적 취약점이 있게 마련이다. 상대의 파워가 느껴지는 곳보다는 나의 파워가 느껴지는 곳에서, 상대가 우월감을 느끼는 상황보다는 당신이 우월함을 보일 수 있는 상황을 선택하고 그곳으로 상대를 이끌어 가라. 거대한 사옥, 공장, 설비, 기업 규모, 거래 규모, 브랜드 파워, 시장점유율, 기술력, 자본력 등 기업적인 요소와 더불어 당신의 학력, 재력, 인맥, 높은 교양 수준, 인품 등 대단히 사적인 요소 등 상대를 압도할 수 있는 조건과 상황을 연출해 상대를 심리적으로 위축시켜 기선을 제압하라.

거물인 래리가 체면 불구하고 평소 거들떠보지도 않던 게코의 집까지 온 데는 다급한 사정이 있었다. 바로 애너콧제철. 그는 몇몇 투자자들과 함께 비밀리에 인수 작업을 추진해 오고 있었다. 그런데 게코의 심복인 버드 폭스가 이 계획을 알아냈고 정보를 보고받은 게코는 자신의 해외 차명계좌를 이용, 애너콧제철 주식 상당량을 암암리에 매집한 것이다. 그리고 증권가에 ‘래리가 애너콧제철 인수에 손을 댔다’는 정보를 흘린다. 이 정보는 주식시장에서 특급 정보로 퍼지기 시작하고 주가는 연일 가파르게 치솟는다.

래리로서는 이런 추세로 가다간 감당할 수 없는 자금 부담으로 인수 자체가 무산될 뿐만 아니라 인수하더라도 사업성을 장담하기 힘들게 됐다. 그래서 급히 게코와 담판을 짓기 위해 여기까지 온 것이다. 그러나 전혀 빈틈을 보이지 않는 게코. 그 누구에게도 굽히지 않던 자존심까지 구겨가며 통사정해 보지만 끝끝내 외면해 버리는 게코를 향해 래리의 분노가 폭발한다. 마음만 먹으면 지금 당장이라도 게코의 회사 정도는 몇 개라도 파산시킬 수도 있다고 협박해 본다. 하지만 게코는 눈을 내리깔고 무심히 듣고만 있다. 협박이 뜻대로 먹혀들지 않자 슬쩍 꼬리를 내리는 래리. 게코의 지분을 넘기라고 제안한다. 주당 가격은 65달러로 해 줄 테니 이 선에서 합의하자는 것이다.

게코: 제대로 붙어 보지도 않고 지레 겁먹고 미리 카드 패 다 까놓고 흥정하는 거, 난 싫어, 래리. 이봐 폭스, 애너콧 주식 얼마면 적정가야?

폭스: 분할 매각하면 값은 더 나가죠. 주당 80달러는 족히 갑니다.

게코: (배려해 주는 듯한 목소리로) 뭐, 너무 욕심 부리지 말자고. 72달러 어떤가?

협상 전략 키 포인트 2

굿 가이 배드 가이 전술(Good Guy, Bad Guy)로 상대를 현혹한다.
부하직원 한 명이 악역을 맡아 지나친 가격을 요구하자, 협상책임자인 당신은 오히려 부하 직원을 나무라며 퇴장시키고 상대를 배려해 주는 새로운 조건을 제시한다. 상대로 하여금 당신을 자기 측에 유리한 사람으로(Good Guy) 인식하게 만드는 협상 기법. 협상 막바지에서 필요한 최종 양보를 상대로부터 받아내는 데 유리하다. 그렇기 때문에 협상 과정에서 적대감을 일으킬 수 있는 강한 조건 제시는 협상 책임자가 아닌 보조 협상자가 그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래리: 자넨 여전히 푼돈이나 노리는 삼류 기업 사냥꾼일 뿐이야. 흐흐. 돈만 주면 자네 어머니라도 팔아치울 놈이 자네야, 안 그래?

게코: 나나 자네나 하나도 다를 게 없어. 적어도 영국 여왕이 자네에게 경이란 호칭으로 부르기 전까지는 말이야. 내가 더 이상 자제심을 잃어버리기 전에 이만 실례(등을 돌리고 나가버리려 한다).

래리: (바로 그때) 71!

협상 전략 키 포인트 3

초강수 퇴장 기법(Walk Away)
아무리 객관적으로 강력한 협상 파워를 지닌 상대라 하더라도 상대가 협상 자체를 결렬하겠다고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리면 간담이 서늘해질 수밖에 없다. 여러 협상 기법 중 가장 파괴력이 강한 협상 기법이 바로 이 퇴장 기법이다. 현실에서는 실제로 협상장을 박차고 나가는 경우도 있지만 e메일이나 전화, 혹은 팩스로 협상 결렬을 통보하기도 한다.

게코: (나가다 멈추고 천천히 돌아서며) 자네가 내 어머니를 모욕한 대가로 71달러50센트.

래리: 좋아 그렇게 하지.

협상 전략 키 포인트 4

알짜배기 협상은 이제부터. 니블링 (Nibbling).
이미 상당한 금액과 물량 협상에 합의한 상대에게 계약 물량, 품목, 사양을 재조정하는 전술. 핵심은 협상 초기에 당신이 제시한 조건을 상대가 거부하는 경우, 상대가 수용할만한 조건으로 일단은 합의를 유도하라는 것이다. 그래야만 무리한 조건 제시로 인한 협상 결렬을 피할 수 있고 타 경쟁 업체에 거래를 빼앗기지 않는다. 또 이미 당신과의 거래를 확정한 상대는 약간의 변경 사항 때문에 거래를 무산시키기에는 너무 발이 빠져 있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당신의 추가 조정 제안이 기존 조건보다 다소 유리한 내용을 담고 있다면 상대 입장에서는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협상 마무리 기법의 꽃이라고 할 수 있다.

약 4분간 지속되는 이 장면은 영화 전편에서 가장 응축된 협상의 진수가 펼쳐진 장면이다. 이 장면에 함축된 협상 기법의 수는 엄밀히 분석하면 40가지가 넘는다. 특히 치밀한 협상 전략과 전술로 상대를 압도하고 원하는 협상 결과를 거둔 게코의 협상력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너무도 크다.

박상기 협상전문가 BNE 컨설팅대표
칼럼 게재 : 한국경제신문 월간 머니 2007년 7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