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의 백악관 밥 값?(이데일리 박상기의 국제협상 25시)

작성일2009/06/25 조회수4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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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의 백악관 밥 값?

[이데일리 박상기 칼럼니스트] 얼마 전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간의 단독 회담이 당초 15분을 훨씬 넘겨 50분 까지 진행되었다는 보도를 보았다. 때문에 35분간의 실무진까지 참석하는 확대 회담이 무산되었다는 기사도 함께.

이를 두고 바이든 미국 부통령은“매우 좋은 징조다”라는 덕담으로 상황을 무마했다. 또한, 우연인지 약속이었는지 양 정상이 똑 같이 감색 양복에다 하늘색 넥타이까지 맞춰 입고 기자회견 장소인 로즈 가든에 나타나기도 했다. 한 미국 기자가 ‘한미 브러더스(KOR-US brothers)'라고 말했다는 내용을 언급하며 짐짓 금번 워싱턴 정상회담이 매우 성공적이라는 메시지를 간접적으로 시사했다.

체면과 위신을 상당히 중요시하는 우리 나라 사람들의 일반적인 정서상, 초강대국 미국대통령의 이례적이며 지극히 개인적인 환대는, 그 자체 만으로도 대단한 성과로 비쳐진다.

“나니까 이 정도 대접 받는 거지, 아무나 이런 대접 받는 게 아니다”라고 말한다 해도 대 놓고 그게 아니다라고 말하기 쉽지 않다. 이른바 잘 나가는 중국과 일본의 정상들 조차도 그 정도의 환대는 받지 못했다니 가히 괄목할 만한 외교성과로 불릴 만 하다.

어찌 보면 미국 대통령과 벌써 막역한 친구가 다 된 듯이 보이는 우리 대통령이 이루어 낼 갖가지 굵직굵직한 외교협상에서의 성과가 이미 반 이상은 달성된 것 같은 기분마저 든다.

시작이 좋으면 끝도 좋다 라던지, 人事(인사)가 萬事(만사)라느니, 관계가 좋으면 안 되는 일이 없다 라며 어떻게 하든 상대와의 친분 수립강화를 매사 제일 우선시 하는 대다수의 한국 사람들로선 그렇게 기대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더욱이, 뭐라 해도, 양쪽 우두머리끼리 서로 의기투합하는 즉, 일단 통하면 일은 다 된 것이나 마찬가지인 우리의 오랜 관습 상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과연 그럴까? 구소련 시절, 고르바쵸프 서기장을 상대로 집요하고 치밀한 협상을 전개해 재래식군축 협상으로 시작하여 결국 소련의 붕괴 및 해체까지 일구어 낸 외교협상의 달인인 레이건 대통령 역시 오바마 대통령이 구사한 똑같은 전략을 구사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1985년 11월 19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만난 레이건과 고르비는, 그 동안 답보상태로 지지부진 하던 양국간의 군축 협상건으로 처음 대면하게 되었다. 소련측이 요지부동 당초의 입장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아 협상은 점점 꼬여 가는 상황이었다.

이때 레이건이 구사한 협상 전략이 바로 오바마가 똑같이 구사한 바로 그 전략, 즉, 당초 15분으로 예정되었던 정상간 단독회담을 1시간여 이상 끌며 친근한 대화와 개인적인 환대로 고르비의 적개심을 허무는 한편, 강경 일변도의 참모들로부터 분리, 격리 시킨 상황에서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고르비의 군축 반대 논리와 입장을 조금씩 조금씩 무너뜨려 갔던 바로 그 전략인 것이다.

양국의 수뇌부가 참여한 확대실무협상이 난항을 겪을 때마다, 레이건은 고르비에게 잠시 둘만이 산책을 하자든가, 따로 차 한잔 마시자 하면서 격의 없는 개별 단독회담(Caucus)을 제의 하였고 고르비는 별 의심 없이 레이건과 함께 협상장을 빠져나갔다.

레이건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자기도 답답한 협상장을 벗어나 시원한 공기도 마시고 잠시 한담이나 하면서 긴장과 피로를 풀려고 한 것이었을까? 결코 아니다. 그것은 레이건이 준비한 치밀하고도 의도적인 협상전략이었다.

즉, 한 순간도 미국에 대한 경계태세와 적대감을 풀지 않고 사전에 검토하고 준비한 답변 외에는 한마디도 허투루 내 뱉지 않는, 즉 미국의 협상전술에 좀처럼 걸려 들지 않는 닳고 닳은 외교협상의 고수들인 크렘린의 참모들과 고르비가 함께 있는 한, 미국이 원하는 군축협정 안이 받아들여 진다는 건 애당초 불가능 하다는 것을 레이건은 정확히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고르비를 그 철통 같은 크렘린이 구축한 협상의 방어벽(Firewall) 안에서 끄집어 낼 것인가?

다행히 고르비는 자부심이 강했고 서기장으로서의 권위의식도 적지 않았나 보다. 그래서, 참모들의 성가신 간섭을 잠시 물리친 채, 세계 초강대국 두 정상간의 격의 없고 친근한 개별 대화를 오히려 특권으로 인식하며 별 의심 없이 응할 것이라고 레이건은 예측했고, 그것이 정확히 맞아 떨어진 것이다. 결국 거듭되는 레이건과의 기분 좋은 한담의 최종 결과는 구소련의 붕괴였으며, 오늘날 미국이란 단일 초거대 군사외교강국의 탄생으로 이어졌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돌이켜보면, 우리나라 주요 정부 인사들이 미국 대통령이나 고위 관리들로부터 사적이며 외교상 전례 없는 극진한 환대를 받았다는 언론 보도를 접할 때 마다 그리고 그 협상의 실질 내용이 꼼꼼히 검토된 후 막상 뚜껑이 열렸을 때마다 실리는 별로 없고 차라리 아니함만 못한 협상이었다고 통탄해 하던 경우가 더 많았던 것 같다.

‘이길 수 없는 적이라면 차라리 친구로 만들어야 한다’는 링컨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국제비즈니스 협상 컨설턴트로서 매번 협상에 임할 때 마다, 제일 먼저 하는 일 중의 하나가 상대의 적대감을 누그러뜨리는 것이며 그로 인해 협상이 의외로 순조롭게 진행되고 기대이상의 성과를 거두는 경우를 얼마 전에도 또 한번 경험한 바 있다.

그러나 본 협상인 확대회담이 시간 부족이란 이유로 제대로 진행되지 못한 상황에서 나온 금번 워싱턴 정상회담의 공동합의문을 통해 본 바로는, 우리 정부당국이 그토록 자랑스럽게 발표한 것처럼 우리가 바라던 실제적인 성과가 과연 제대로 있었는가라고 묻는다면 안타깝게도 속 시원하게 그렇다라고 말하기 어려운 심정이다.

오히려, 부시정부 말기 현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한미 FTA협정 비준을 조속히 추진해 달라며 허겁지겁 달려가, 아무나 안 데려간다는 미국 대통령의 별장, 캠프 데이비드에 초청 받아 살 갑은 갖은 환대를 받고 난 후, 잔디밭에서 자랑스레 발표했던 한미FTA협정 비준 공조협약은 아직까지 미국 의회에서 여러 중차대한 사안들에 밀려 여태껏 공전하고 있는 답답한 현실과, 미국산 쇠고기 수입개방은 미국측의 요구대로 부랴부랴 전격 수용 및 시행되었던 오래지 않은 기억을 되살린다면, 오바마 대통령의 전례 없는 환대 기사가 낭보가 아니라 웬지 불길한 징조로 비쳐진다.


박상기 글로벌협상컨설팅 대표

이데일리 박상기 칼럼니스트 bnemaster@empal.com


위스콘신 매디슨 MBA 졸업
연세대학교 협상학 겸임교수
CJ 미디어 국제협상담당 상무 역임
역서 : 협상의 심리학